생산성과 일의 질

우리나라의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마케팅도 일은 많고 성과는 적습니다. 마케팅 담당자들은 항상 일에 쫓깁니다. 콘텐츠나 광고 제작을 관리하고, 광고를 집행하고, 보고를 하고,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는 과정은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일에 쫓기며 살게 됩니다. 사람마다, 회사마다 일에 쫓기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 일을 많이 하는데 성과는 생각만큼 안 날까요? 마케팅을 잘 한다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우리보다 일도 적게 하는데 더 혁신적이고 새로운 방법도 많이 내놓고, 전반적인 성과도 더 좋을까요?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고, 책을 한 권 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유들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힘듭니다. 이 글에서는 개별적인 노력으로 마케팅 활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지금 하는 여러가지 일에 적용해볼만합니다. 또한 마케팅 외 다른 영역에서도 일반적으로 활용해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일의 프로세스나 세부적인 단계에서 결정 권한이 있을 때 더 유용합니다. 주니어 레벨에서 일을 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경영자나 임원, 팀장과는 다르겠지만 역시 의사결정을 하고 해결할 일이 많습니다. 만약 그런 과정이 하나도 없다면, 5년 내에 그 일자리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성과가 나는 이상적 형태

의사결정의 중요성

대부분의 성과는 결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성과의 90%는 특정한 결정 자체에서 나오고 10%가 그 결정에 수반하는 작업과 업무에서 옵니다. 아주 크게 보면, 마케팅의 성패는 (경영자, 회사의 구성원, 제품이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자원을 가장 많이 투입할 마케팅 활동을 정하고 그에 맞게 자원을 배분하는 일에서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서 콘텐츠 마케팅을 하기로 하고 밸러스트같은 대행사를 선택하고, 실행 단계에서 제대로 프로세스를 밟으면 성공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여기서의 불행은 적절한 마케팅 방향을 설정하는 회사도, 프로세스를 제대로 밟아서 마케팅을 진행하는 회사도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마케팅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소셜미디어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SNS 마케팅 업체에 대행을 맡기거나 어설프게 팀을 꾸리면 그 예산과 시간은 1년 후 거의 다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의사결정과 생산성, 효과와 효율

좋은 결정은 효과와 생산성과도 직결됩니다. 많은 일은 결정보다는 실행에 자원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듭니다. 얼마나 좋은 결정을 하냐에 따라 실행의 효율이 달라진다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실행 내에서도 높은 층위의 세부 방향과 결정이 그 아래 층위의 효율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일은 결정의 연쇄적 고리이기도 합니다.

파레토

의사결정의 중요성은 파레토 원리와 비슷합니다. 다만 저는 20:80 이 아니라 10:90, 혹은 5:95 정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높은 층위의 의사결정을 얼마나 잘 했는지가 어떤 일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물론 항상 결과가 좋은 의사결정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의사결정을 가장 잘 해온듯한 제프 베조스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들도 틀린 결정을 많이 합니다. 다만 이런 사람들은 좋은 의사 결정의 확률이 높고, 사안의 중대함에 따라 자원 배분을 잘 해온 사람들입니다. 일반적인 한국의 직장인은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고 5-6시간을 자는데, 베조스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가족과 항상 저녁 식사를 하고, 설거지도 합니다. 그 비결은 그의 의사결정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조스는 엄청나게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지난 20년 간 연속해서 잘 해왔고, 좋은 결정에서 오는 높은 생산성과 에너지로 다른 결정도 잘 할 확률을 높여온 것 같습니다.

잡담. 그렇다고 표면적인 행동을 따라할 필요는 없습니다. 리바이스 청바지에 이세이 미야케 니트를 입는다고 스티브 잡스가 되지도, 양복을 두 벌만 입는다고 오바마가 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런 행위들도 의사결정과 연관은 있습니다. 추측하면, 그런 사람들은 일상에서의 사소한 의사결정에 시간과 노력을 쏟고 싶지 않아서 저런 행동을 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결정의 비중을 10%로 두고, 90%의 노력을 실행에 기울입니다. 처음의 결정이 여러 변수로 인해 틀린 것이었다 해도 자원을 계속 투입하게 됩니다. (이유는 권한의 부족, 상황 파악이 안 됨,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매몰비용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낮은 생산성과 번아웃 입니다.

 

Garbage in, Garbage Out (GIGO)

의사결정과 실행의 관계와 의사결정의 중요성은 garbage in, garbage out 으로 말해도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생선 싼 종이에서는 생선 냄새가 나고 향 싼 종이에서는 향 냄새가 난다.” 도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좋은 것을 넣었는데 좋은 것이 나오기는 힘 듭니다. 안 좋은 의사결정을 하고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들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확률의 문제입니다. 안 좋은 의사결정과 좋은 노력의 조합이 좋은 결과로 나올 확률보다 좋은 의사결정과 안 좋은 노력의 조합이 좋은 결과로 나올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

GIGO의 예 : 아마존 AI 의 성차별적 의사결정

AI가 세계적으로 열풍과 기대 우려를 몰고 오는 가운데, 최근 재밌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아마존에서 AI에게 채용 결정을 맡겨보았더니 매우 성차별적인 결정만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알고리듬을 바꿔보아도 성차별적 결과는 여전하였습니다. 결국 아마존이 AI에게 채용 의사결정을 담당하게 하는 프로젝트는 3년 간의 시도 끝에 작년에 폐기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여러 함의가 있지만, 마케팅과 비즈니스에서의 GIGO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온갖 잘못된 행동과 관습을 학습한 기계는 극단적으로 잘못된 결과를 내놓습니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의사결정에서 시작하는 실행은 의사결정의 잘못을 증폭한 결과를 내놓습니다.

마케팅의 잘못된 의사결정, 참사로 이어진다

저는 가끔 운전을 하고 운전을 할 때 라디오를 켭니다. 마케팅 에이전시의 일원으로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광고도 유심히 들어봅니다. 그리고 때로는 광고에 나오는 회사를 검색해보고 웹사이트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때마다 높은 확률로 충격을 받습니다.

주요 방송국의 인기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보낼 정도의 회사라면 마케팅 예산을 적지 않게 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공중파 채널에 광고를 내보낸다는 것은 인지도 상승을 위한 전략이며, 제품이나 브랜드의 이름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보게끔 하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회사마다 고객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는 있지만, 저는 마케팅의 기본이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행위가 고객의 신뢰를 져버리는 행위라고 봅니다. 이것이 당장은 크게 문제가 안 될지라도 시간이 갈수록 사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의 예들은 신뢰를 깎아먹는 행위를 큰 돈을 들여 하고 있습니다. 인지도를 높이는 것 이전에 좋은 인지도인지 나쁜 인지도인지를 구분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역시 잡담. 그래서 최근에는 계속 신분 세탁을 해가며 소셜 미디어 광고를 적당히 잘 만들어 불량 제품을 파는 회사들도 보입니다. 이들은 계정을 바꿔가며 광고를 배포하고, 이런 저런 그로스 해킹(+ 추측컨대 인력 착취와 부정행위)을 통해 높은 광고 퍼포먼스를 냅니다. 이런 경우에 대해서 남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긴 어렵지만 굉장히 위험해 보입니다. 그런데 더 위험하고 걱정되는 것은 그런 마케팅 방식이 좋은 것으로 인지되고, 당장 매출을 내니까 다들 비슷하게 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를 느낄 때입니다.

의사결정의 기준 part 2 - 회색지대와 노브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