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의 기준 – 노브레이너와 회색영역

지난 편에서는 의사결정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의사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작은 결정이 가져오는 결과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단적인 예로는 베이비부머(지금의 한국 50-60대)의 취업 결정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취업은 쉽고 이직과 퇴사는 적던 그 당시의 A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해봅니다. 20대 초중반에 은행, 자동차 회사, 종합 상사, 전자회사 등에 모두 합격하여 한 곳을 선택해야하는 A씨. 며칠, 길어야 몇 달 간의 고민과 결정에 따라 A의 인생 이후 30년이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노브레이너와 회색영역

노브레이너

노브레이너는 No Brainer 입니다(그냥 영어에서 흔히 쓰는 표현을 제가 갖다 쓰는 것이고, 마케팅이나 경영 등에서 정해진 용어는 아닙니다. 혹시 어디 가서 사용하게 되면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노 브레이너는 말 그대로 머리를 쓸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무조건 하기만 하면 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 걷지 않고 차나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간다.
  • 비가 오니까 우산을 쓴다.

 

같은 것입니다.

마케팅 에이전시로서 일을 하면서 여러 회사의 마케팅 활동을 보면, 의외로 이런 노브레이너를 등한시하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마케팅에서 노브레이너의 예

  • 인스타그램 등 소셜 광고를 한다 – 사이트나 랜딩 페이지를 모바일에서 잘 보이게 만든다
  • 전환을 높이고 싶다 – 무작정 광고를 하기보다는 잠재고객이 관심을 가지고 흥미 있어할 콘텐츠를 만든다.
  • 대규모 마케팅 캠페인을 한다 – 제품과 서비스의 유통망을 잘 갖추고, 모든 마케팅 채널도 최대한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준비한다.

위의 사항들을 읽고 ‘당연한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당연한 일들은 의외로 당연하지 않습니다. 실무를 진행하다보면 노브레이너에 집중하지 못하는 수없는 상황들이 생깁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회색영역

회색영역은 노브레이너가 아닌 나머지입니다.

그렇다면 의사결정에서 당연한 것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정확히 계산하긴 힘들지만 저는 대략 1% 미만만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에는 엄청나게 친했지만 한 번도 연락이 없다가 결혼한다는 친구의 결혼식에는 가야할까요? 축의금이라도 내야 할까요? (저는 안 갑니다)

집값은 5년 후에 내릴까요? 오를까요? (영원히 오를 것 같던 홍콩의 집값을 생각해봅니다)

공들여 만든 콘텐츠가 성공해서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질까요? (쉽지 않습니다)

새로 출시한 제품은 인기를 끌 수 있을까요? (신제품이 성공할 확률은 기본적으로 매우 낮습니다)

마케팅 실무에서 회색영역의 예를 좀 더 들어보겠습니다.

  • 영상을 어떻게 만들까
  • 유튜브 바이럴을 어떻게 할까
  • 모델은 누구를 쓸까
  •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할까
  • 인플루언서는 누구를 쓸까
  • 잡다한 디자인 결정과 수정
  • 광고의 데일리 위클리 효율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한에 맞춰 마케팅도 해야 하고, 주거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해야 할 때도 생기고, 회사의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이나 제품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이런 회색영역에 시간과 노력을 대부분 쏟아붓습니다.

 

마케팅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악용하는 세상

 

이렇게 어려운 결정에 대해 소위 전문가들은 정말 쉽게 이야기합니다. 마치 그 일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결책이 있고 정답이 있는 것 처럼요. 그리고 이 전문가나 회사의 정보를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면 지금의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 같다는 착각을 줍니다.

이런 종류의 전문가들이 실제 성과를 내고 문제를 해결해줄 확률은 어느 정도 될까요? 이 확률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전문가에게 어떤 문제를 맡겼느냐 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문제를 맡기는 영역을 정하는 것이 의사결정입니다.

이 확률을 결정하는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문가의 능력과 수준이고 나머지는 운입니다. 어떤 문제이냐에 따라 운의 영역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리고 훌륭한 전문가는 운을 거스르기까지는 못해도 성공 확률을 확연히 높이는 방법을 이해하고 절차대로 실천합니다.

 

운과 실력의 예: 소셜미디어 대행 업무

지난 10년 간 마케팅의 지형 변화로 소셜미디어는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이용자 수, 매출과 이익, 주가 성장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소셜미디어의 성장으로 국내 소규모 대행사들도 덕을 보았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콘텐츠 제작과 광고 집행 등으로 꽤 큰 매출을 내고 어엿한 비즈니스로 자리잡은 회사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이보다 더 하위 레벨의 각종 업자들, 팔로워와 좋아요 조작 업체들마저도 우후죽순으로 생겼습니다. 이렇게 많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시장이 있고 돈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소셜 미디어 마케팅 대행업의 성장은 그 회사들의 실력보다는 운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이 떠오르는 매체일 때,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페이스북은 아직 노출에 대한 수익화를 크게 하지 않을 때, 그 영역에 있던 회사들이 좋은 퍼포먼스를 내고 자리를 잡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에이전시도 일정부분 네트워크 효과가 있기 때문에, 몇몇 이름 있는 클라이언트가 생기면 다음 클라이언트 업무를 수주하기가 더 쉽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소셜미디어 마케팅 시장은 커졌고,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지만 그만큼 경쟁자는 많고 여건은 어렵습니다. 초기와 같이 높은 퍼포먼스와 성장은 기대하기 힘 듭니다.

하지만 이런 대행사들의 잠재고객들은 과거의 좋은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대행사를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딱히 다른 기준이 없기도 합니다.

사실 여기서 클라이언트는 ‘어떤 대행사와 업무를 함께할까’ 보다는 ‘무엇을 어느정도로 할까’에 10배, 100배 더 집중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훌륭한 의사결정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정 집단을 욕하는 것은 아니고, 원래 확률적으로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집단의 수는 적습니다. 의사결정의 질도 상대적인 것이고 전체적인 맥락과 경쟁 지형속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게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케팅 의사결정 폭망 사례 : 타겟과 애플의 구원자 론 존슨이 JC페니 백화점 매출을 반토막 낸 이야기

론 존슨은 타겟 매장의 머천다이징을 담당하며 ‘타겟은 싸면서도 유용하고 적절히 감각적인 제품을 판다’는 생각을 고객에게 인식시켰습니다. 이후 론 존슨은 애플의 리테일 매장의 의사결정을 맡게 되었고, 지금 애플 리테일 매장의 방향을 제시하고 운영하여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참고로 애플 리테일 매장은 세계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단위면적당 매출과 수익이 가장 큽니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존슨은 2011년 당시 매출과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의 유명 백화점 체인 JC페니 CEO를 맡게 됩니다. 너무 많고 잦은 할인과 복잡한 가격체계가 문제라고 생각한 존슨은 할인을 줄이고 가격 체계를 단순화합니다. 일종의 고급화 전략이었습니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여 수십 개의 제품을 4개로 줄인 것도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리기 위한 ‘제값받기 캠페인’에 조 단위의 마케팅 비용을 씁니다.

그리고 2013년, JC페니는 그나마 줄던 매출이 반토막 나고, 존슨은 퇴임했습니다. JC 페니의 충성 고객은 원래 JC페니에서 할인 보물찾기를 즐기는 사람들이었고, 이런 할인에 관심 없는 고객은 이미 경쟁사인 메이시스 등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JC페니 신임 CEO의 짧은 고민과 결정이 1년 간 수조원을 날린 셈입니다.

마케터로서 생각해볼 문제는, 당시 조단위의 비용을 들인 캠페인에서 잘못된 것이 있었을까요? 분명 광고도 잘 만들고, 디지털 캠페인의 효율도 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름 퍼포먼스와 인게이지먼트 수치가 좋았을 것입니다. 가장 큰 잘못은 론 존슨과 의사결정 집단의 고객 이해였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회색지대와 노브레이너의 구분

마케팅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는 회색지대와 노브레이너를 열심히 구분하지 않아서, 그리고 노브레이너를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하지 않아서 생깁니다. 이 구분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실제 업무에서 이것을 조금이라도 쉽게 구분해볼 방법을 생각해봤습니다. 노브레이너와 회색영역에 그나마 가까운 비유는 우리가 흔히 일에 대해 말할 때 중요함과 긴급함 구분인 것 같습니다.

 

그림에서 보듯, 우리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쏟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 앞에 주어진 것을 빨리 인식하고 처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대니얼 카느만은 이것을 시스템 1 thinking 이라고 합니다.

 

마케팅에서 노브레이너를 더 잘 파악하는 연습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 외적인 요인에서 주어진 일보다 사실은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일을 하는 일 자체가 인간으로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듯 이런 일을 할 경우 장기적으로 성과와 보상이 클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개인이나 조직으로서 우리는 주어진 한계 안에서 노브레이너, 최대한 중요하면서 덜 급한 일을 찾아 해결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간단한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

  • 확률적 사고 – 어떤 일을 했을 때의 장기 단기 성과를 확률적으로 생각하기. 맥락을 이해
  • 광고 이전에 캠페인, 캠페인 이전에 제품, 제품 이전에 회사의 존재 이유, 회사 이전에 고객에게 주는 가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전체에서 자신의 역할과 일에 대해 생각하기.
  • 업무 지시와 요청 포함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행동하는 수위 고민하고 조절하기.

이사야 벌린의  “두더지와 여우”

좋은 의사결정을 하여 우리가 하는 (마케팅) 일의 성과, 수익은 물론 의미를 높이는 방법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습니다. 이 중 이사야 벌린의 ‘여우와 두더지’를 생각해봅니다. 벌린 역시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쿠스 에서 착안했다고 하니, 노브레이너와 회색영역을 구분하는 자체는 인간의 오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벌린의 개념이 유명해진 계기는 미국의 정치학자 필립 테틀락이 이를 인용하면서입니다)

 

벌린은 두더지와 여우를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There exists a great chasm between those, on one side, who relate everything to a single central vision, one system, less or more coherent or articulate, in terms of which they understand, think and feel – a single, universal, organising principle in terms of which alone all that they are and say has significance – and, on the other side, those who pursue many ends, often unrelated and even contradictory, connected, if at all, only in some de facto way, for some psychological or physiological cause, related to no moral or aesthetic principle.”

모든 것을 자신이 이해하는 한 가지 관점과 한 가지 시스템에서, 단일한 원칙을 갖고 파악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관련이 없거나 모순되어 보이는 여러 가지 것을 함께 살펴 보는 사람이 있다.

이후를 짧게 말하자면, 좋은 의사결정을 위해 우리는 벌린이 말하는 여우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항상 두더지 같은 사람과 조직을 높이 평가하고 혜택을 줍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점점 강해집니다. 그 이유는 여우가 하는 일은 오래 걸리고, 걸림돌도 많고, 당장 눈 앞에는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결론

요즘의 마케팅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봅니다. 모두가 두더지 같은 환경이며, 이 중 특정한 두더지가 각광을 받고 여기에 시간과 자원과 예산이 몰립니다. 하지만 금맥이나 석유를 기대하고 두더지가 판 땅에서는 금이 더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일, 성과가 높은 일은 여우 같은 행동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회색 영역에서 노브레이너를 찾아 해결하는 일이 마케팅에서 여우같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개인이건 조직 차원이건 규명한 노브레이너는 되도록 빨리 해결하고, 결과를 살펴보고, 개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