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되면서 밸러스트는 작은 내부 프로젝트를 실행했습니다. 기존의 워드프레스 웹사이트를 정적 웹사이트(static website)로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워드프레스는 웹사이트 만들고 콘텐츠를 관리하기에 매우 훌륭한 방법입니다. 확장성과 기능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서, 세계적인 기업이나 국가들도 워드프레스를 고유 매체로 많이 사용합니다. 현재 아무 문제 없는 워드프레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밸러스트를 운영하고 일을 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프로세스와 원칙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는 오컴의 면도날 입니다.

오컴의 면도날

오컴의 면도날은 문제해결에서의 최소 법칙 입니다. 중세 스콜라 학파 오컴이 구체화한 생각이어서 오컴의 면도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컴의 면도날에서는 어떤 현상에 대해 설명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방식 중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방법을 선호합니다. 뉴턴, 아인슈타인, 초기 비트겐슈타인 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 뉴턴: 자연의 것들은 드러난 그대로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따라서 같은 현상에는 같은 이유를 적용해야 한다. We are to admit no more causes of natural things than such as are both true and sufficient to explain their appearances. Therefore, to the same natural effects we must, as far as possible, assign the same causes

  2. 비트겐슈타인: 어떤 기호가 불필요하다면, 의미도 없다. 오컴의 면도날이 그 말이다. If a sign is not necessary then it is meaningless. That is the meaning of Occam’s Razor.

  3. 러셀: 가능한 한 모르는 것을 추론하기보다는 아는 것으로부터 맞춰가자. Whenever possible, substitute constructions out of known entities for inferences to unknown entities.

  4. 아인슈타인: 사물들은 최대한 단순해야 하지만, 필요한 것이 빠져서는 안 된다. Things should b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 simpler.

밸러스트는 고객의 마케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입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확률이 높은 프로세스를 적용하고 이에 맞는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마케팅에서는 오컴의 면도날 같은 생각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디지털이 생활이 깊이 파고든 지 20년이 되었고, AI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주는 변화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큰 변화가 시작될 때가 그렇듯, 복잡함과 혼란이 커집니다.

정적 웹사이트

이런 오컴의 면도날과 정적 웹사이트가 무슨 상관일까요? 인터넷의 변화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인터넷 초기의 웹사이트들은 html 코드로 작성한 문서를 이용자에게 보여주기만 하는 정적 웹사이트였습니다. 온라인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상거래가 많아지면서 이렇게 저장된 내용만을 호출하여 열람하는 기능보다는 이용자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해졌습니다. 이런 기능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에서 동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생성하여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많은 웹사이트들은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그 때 그 때 필요한 내용을 생성하여 이용자에게 보여줍니다.
정적 웹사이트와 동적 웹사이트에 대해 더 자세하고 좋은 설명 링크
위 링크의 글은 4년 전 작성된 내용이며, 지금은 정적 웹사이트 개발 환경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JAM(Javascript, APIs, Markup) stack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지면서 정적 웹사이트는 최근 1-2년 사이 동적 기능을 구현하기도 쉬워지고 훨씬 더 강력해졌습니다.

정적 웹사이트의 귀환

하지만 수많은 웹사이트 중 DB가 필요한 동적인 기능을 주로 쓰는 곳은 극소수입니다. 채팅이나 소셜 미디어는 당연히 동적인 기능 위주이지만, 온라인 쇼핑만 해도 결제와 회원 페이지, 고객 서비스 외의 기능은 정적인 기능입니다. 밸러스트아이앤씨는 마케팅 에이전시라 정적 웹사이트가 더 적합합니다. 주요 기능은 이용자에게 글과 회사 소개를 보여주고, 구독 신청을 받고, 문의를 전송받는 일 입니다. 이 중 동적인 기능은 구독신청과 문의 전송, 검색 기능 정도이며 정적인 기능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전세계 웹사이트 트래픽의 대부분이 정적 기능이라는 점에서, 3년 정도 전부터 세계적으로는 정적 웹사이트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에 맞춰 정적 웹사이트에 관한 인프라와 서비스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정적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배포하고, 동적 기능까지 넣고, 관리하기가 엄청나게 편리해졌습니다. 아직까지 워드프레스나 반응형도 첨단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워드프레스나 기타 웹사이트 서비스들을 활용하면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꽤 훌륭한 웹사이트와 콘텐츠 관리 시스템까지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밸러스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정적 웹사이트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적 웹사이트의 장점으로 꼽는 사항들은 훌륭한 마케팅, 훌륭한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합리성이나 타당함 같은 원리로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정적 웹사이트도 여러 장점이 있지만 단기간에 주류가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적 웹사이트를 구축한 이유를 통해 밸러스트가 무엇을 하려고 노력해왔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더 분명히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적 웹사이트와 마케팅 함의

요약하면, 정적 웹사이트의 핵심은 필요한 때 필요한 것 만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오컴의 면도날과 연결됩니다. 구체적인 특성들을 마케팅에 대한 생각과 일의 프로세스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완결성을 지닌 간결함

정적 웹사이트는 유저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데이터를 생성하여 제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워드프레스처럼 새로운 기능을 위해 플러그인을 여러 개 추가할 필요도 없습니다. 워드프레스에서 기능을 하나 추가하기 위해서는 플러그인 하나가 아니라 3-4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플러그인의 호환 문제로 사이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늘어나는 플러그인 때문에 사이트의 속도도 느려집니다.

마케팅 함의

마케팅에서는 전략 없는 마케팅 활동이 비슷합니다. 명확한 목표와 방식을 생각하지 않고 채널을 운영하거나 콘텐츠를 만들다보면 그 때 그 때는 잘 하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많은 것이 엉켜 있습니다. 그리고 복잡하게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확장성(scalability)

정적 웹사이트의 또다른 장점은 확장성입니다. 정적 웹사이트는 서버 공간만 필요할 뿐 리소스가 필요없습니다. 따라서 사이트 방문자가 100배, 1000배가 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정적 웹사이트는 서버가 필요 없고 저장공간만 있으면 됩니다.
반면 워드프레스 포함 DB를 사용하는 웹사이트는 방문자가 늘어나면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용량과 서버 리소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워드프레스나 DB 기반 웹사이트도 기능을 계속 추가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확장성이 좋지만, 이용자 수가 많아지면 프로세스도, 운영방식도, 비용도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에서는 확장성이 떨어집니다. 확장성 문제는 연말 브랜드들의 웹사이트 마비에서 쉽게 드러납니다. 연말에는 많은 브랜드들이 대폭 할인행사를 하고, 이런 할인행사를 하는 브랜드들이 네이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1위를 차지하는 브랜드의 웹사이트 대부분은 마비 상태였습니다.

동적 웹사이트 확장성 면에서 동적 웹사이트가 갖기 쉬운 형태

밸러스트도 방문자가 늘어남에 따라 서버 리소스에 대해 아주 작게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밸러스트같은 소규모 마케팅 에이전시의 웹사이트는 방문자가 아무리 많아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방문자가 많더라도 웹사이트 유지 비용이 얼마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도 관계 없이 일관적인 유지 관리 프로세스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적 웹사이트는 밸러스트의 철학에 부합합니다.

마케팅 함의

지금 마케팅과 사업을 잘 하고 있는 회사를 보고 ‘저 회사는 이렇게 이렇게 해서 잘 됐다’ 라고 얘기하기는 쉽습니다. 그리고 표면적인 행위를 따라하기도 그나마 쉽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행위를 한다고 해서 똑같이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결과를 낸 마케팅 활동은 핵심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프로세스가 확장되어 나타난 경우가 많습니다. 이 프로세스에는 상황과 맥락도 중요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발견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가치 > 가격

정적 웹사이트는 서버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운영 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저장공간은 대부분 무료로 쓸 수 있으며, 유료 저장공간도 서버 비용보다는 훨씬 저렴합니다. 이 외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는 정적(static)방식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기능들(쇼핑, 양식전송, 채팅, 회원가입)에 대한 솔루션 비용, API 이용에 대한 비용입니다. 하지만 이 비용도 DB 기반 웹사이트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늘어나는 트래픽과 데이터 이용량 중 정적인 부분에 대한 비용은 대폭 절감 가능합니다.

마케팅 함의

저는 마케팅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이 얻는 효용이 지불하는 가격보다 클 때 거래를 시도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마케팅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마케팅과 광고활동은 팔려고 하는 것의 가치를 부각하거나, 가격이 낮다는 점을 알리는 일입니다.

속도/사용자 편의성

웹사이트의 속도가 느리면 이탈률이 높아집니다. 즉 속도는 사용자 편의성 문제와 밀접합니다. 정적 웹사이트는 본질적으로 DB 기반 웹사이트보다 빠릅니다. DB 기반 웹사이트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DB 기반 웹사이트의 속도 최대치가 정적 웹사이트의 최저치 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기계장치에서 용량이 큰 기계가 쉽게 하는 일도 용량이 작은 기계에는 과부하가 걸리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밸러스트도 기존 사이트에서 속도 향상을 위한 조치들을 꽤 열심히 해서 속도가 과하게 느리지는 않았습니다. 워드프레스 사이트에서는 캐싱 플러그인을 기본으로 하여 몇 가지 방법을 쓰면 속도가 올라갑니다. 하지만 캐싱 플러그인의 설정에 따라 웹사이트가 다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문제들을 덮기 위해 미봉책을 끊임없이 적용하다가 큰 문제가 생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케팅 함의

저는 모든 마케팅 메시지와 채널 활동을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용자 경험의 핵심요소에는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광고를 배포한다면 이 광고에 관심 있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되 반복 시청은 없게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광고이건 마케팅 콘텐츠이건 담긴 내용 역시 UX 이기 때문에, 타겟 고객이 관심을 갖고 관여하며 전환을 위한 행동을 하기 좋은 메시지 여야 합니다.

끊임없는 배움. 최적화.

정적 웹사이트로 전환한 가장 큰 이유는, 밸러스트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업무방식과 프로세스 개선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웹사이트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케팅 에이전시로서, 특히 고유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마케팅 에이전시입니다. 따라서 고유매체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더 앞선 방식을 검토, 실험, 실행, 최적화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결과를 정리하고 공유하며, 장점은 더 많은 회사들이 활용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일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케팅 함의

마케팅도 그렇지만,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전보다는 나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만이 배움은 아닙니다. 그리고 전보다 나은 것이 꼭 돈이 많아지거나, 사회적인 권력이 강해지거나, 유명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배움을 통해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가 서로 마주하고 대화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는 자체가 인생의 큰 재미이자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밸러스트는 새해 목표설정과 결심 대신 정적 웹사이트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했습니다. 정적 웹사이트라고 모든 것이 완벽하지도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자원 소모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밸러스트의 웹사이트는 깨진 링크와 채울 내용을 남겨둔 MVP(Minimum Viable Product)입니다. 그러나 회사의 목적, 일을 하는 원칙, 프로세스, 실행의 결과물의 정렬을 더 잘 하는 과정으로서 정적 웹사이트 도입의 의미가 컸습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를 다른 방식으로 살펴보고 규정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