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이 실패하는 이유 2가지 - 모델과 실행

마케팅이 생각만큼 잘 되는 조직은 많이 없습니다. 이유의 근원을 자세히 이야기하려면 길고 복잡합니다. 그래도 마케팅이 생각보다 잘 안 되는 이유 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꼽자면 1. 다양한 마케팅 모델을 유연하게 적용하기 힘들어서 2. 마케팅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입니다.

이 중 다양한 마케팅 모델의 유연한 적용은 마케팅 모델의 한계에서 부족하지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글 이후에 좀 더 정리된 생각을 짧게 보충해보면: 우리는 마케팅 계획, 실행, 분석을 위해 마케팅 외 여러 분야에서 가능한 다양한 모델을 고민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다양한 모델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 번째 이유인 마케팅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는 제가 썼지만 참으로 애매한 말입니다. 도대체 어느정도가 충분한 것일까요? 그리고 무엇이 충분해야 할까요? 이 애매함을 줄이기 위해 제가 출근할 때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화: 계단 오르기

저의 사무실은 20층 정도 되는 건물의 11층에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3-4개 층은 꽤 규모가 큰 게임회사가 사용합니다. 저는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아침에 해야 할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사무실에 출근하면 게임회사의 출근시간과 겹칩니다. 제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1층에서 13층 정도까지에 25인승 엘리베이터 3개가 할당되어 있습니다. 25인승 정도면 사무용 건물에 들어가는 승객용 엘리베이터 중 가장 큰 축에 속할 것 같지만, 게임회사의 출근시간에는 엘리베이터 앞에 20-30m 정도 되는 줄이 생깁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 많은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싫어합니다. 만원 엘리베이터로 인해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붙는 것도 싫고, 그 안에서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직장동료간의 의례적 잡담을 듣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무실이 있는 11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갈 때가 많습니다. 이 건물의 11층이면 보통 아파트 20층 정도 높이입니다. 보통 아파트 한 층의 계단 수가 16-18개 정도인데, 이 건물의 1-3층은 한 층계단 수가 40개이고, 나머지 층은 25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등산, 계단 오르기, 걷기 등을 싫어하지도 않지만 딱히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고층 사무용 건물의 계단은 작은 건물이나 아파트의 계단보다 더 밀폐되어 있고 답답한 느낌을 줍니다. 4층 정도를 지나다보면 허벅지 근육에 아주 작지만 자극도 오고,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그 상태로 11층에 도착하면 작은 안도감마저 듭니다.

이렇게 사무실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일은 하루 일과 중 아주 짧은 시간이고 스쳐지나가는 작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준비와 지식, 선택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없이는 하루의 상당부분을 망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겠다는 선택을 할 때 필요한 정보와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무실이 몇 층인지에 대한 정보
  2. 올라가는 길에 층 수를 바로 찾아갈 수 있도록 표시가 되어 있다는 확인
  3.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출입구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카드
  4. 그 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도 크게 힘들지 않을 체력(근육량과 폐활량)

마케팅을 충분히 한다는 것의 의미

많은 조직이 의욕적으로 특정 마케팅 활동을 시작했다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는 일이 많습니다. 의욕적으로 웹사이트나 영상 등을 만들고 소셜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고 광고를 집행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ROI가 낮은 마케팅이 됩니다. 마케팅을 충분히 하지 못해 실패했다는 말은, 무엇이 필요한지를 몰라서 제대로 된 계획, 활동, 자원배분, 실행을 못했다는 말입니다. 마케팅을 충분히 하기 위해서도 다음의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1. 목적을 안다
  2. 목표를 안다
  3.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안다
  4. 수단을 활용하고 도와줄 수 있는 자원이 있고, 이를 충분히 사용한다

제가 계단을 오르는 이야기를 겹쳐보겠습니다.

목적을 안다 :

계단 : 제가 아침에 눈을 떠 밸러스트아이앤씨 라는 마케팅 에이전시 사무실에 거의 매일 나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업의 형태, 일의 형태, 마케팅의 형태를 좀 더 명확히 만들고 더 좋은 일을 하며, 이 일로 관련된 사람들과 회사들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함입니다.

마케팅 : 마케팅은 사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자 계획입니다. 마케팅을 하는 조직은 사업을 통해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그 가치만큼 유형, 무형의 보상을 받습니다. (이론적, 이상적으로 그렇습니다) 마케팅은 결국 그 가치를 잘 설명하고 상황 내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 가치에 공감하도록 의사소통하는 일입니다. 조직이 존재하는 목적과 조직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케팅 활동을 하면 당연히 잘 하기 어렵습니다.

목표를 안다 :

계단: 11층까지 걸어 올라간 후에 그 날 처리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11층까지는 걸어올라가야 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하지 못하면 계획했던 일들은 처리를 못하거나 늦어집니다. 마케팅: 사업의 목적은 다소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원래 가치는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눈에 즉각 드러나기 힘듭니다. 1시간을 걸어가야하는 목적지가 있다면, 출발할 때는 갈 곳이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만약 길을 안다면) 눈앞의 이정표들을 따라 걸어갑니다. 아주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먼 길 중간 중간의 이정표들이 목표와 비슷합니다. 마케팅의 목표는 인지도, 전환율(같은 상황에서 더 잘 설득하는 확률), 유지율(설득 이후의 신뢰 수준 유지) 같이 약간은 더 계량화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물론 이런 목표들도 너무 크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더 잘게 목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마치 디지털 마케팅 지표를 계층화하고 세분화할 수 있는 것처럼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안다

계단: 만약 출입카드를 놓고 왔다거나, 가방이 필요한데 안 들고 왔으면 굳이 11층까지 걸어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임시 카드라도 줄 수 있는 관리자가 있는 층으로 가거나, 집에 갔다오거나, 다르게 올라가거나 일처리할 방법을 찾아야할지도 모릅니다.

마케팅: 마케팅 채널과 콘텐츠의 문제입니다. 어떤 콘텐츠로 어디에서 누구와 이야기할 것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이고 수월한지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유행하는 수단이 최선의 수단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유행하는 수단은 너무 많은 경쟁자가 몰려 있어 비싸고, 타겟 고객 역시 다른 수단과 방식을 통해 더 만나고 설득하기가 쉬울 때가 많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적절한 수단에 대해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해 비싸고 효과가 없는 수단을 선택합니다. 이런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1) 고객을 잘 이해하고 2)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충실해야 합니다(콘텐츠의 관련성, 품질, 메시지 발신과 커뮤니케이션의 적절성)

자원이 있고 이를 충분히 사용한다

계단: 짐이 너무 많거나, 걷기 힘들 몸상태이거나, 다리를 다쳤거나, 아파트 기준 20층 정도를 걷고 금방 회복할만한 근육량과 폐활량이 없으면 걸어올라가면 안 됩니다. 조금 불편함을 참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낫습니다. 아니면 휴가를 내고 쉬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케팅: 마케팅 활동이나 캠페인에서 목표와 예산의 간극이 큰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야의 마케팅인지, 마케팅 목표가 무엇인지,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각도로 이해하지 못하면 예산을 적절히 책정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산을 너무 많이 책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예산을 부족하게 세우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예산이 남으면 목표를 달성하고 예산 집행을 중단하면 됩니다. 예산을 좀 낭비했다면 효과는 있되 효율은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목표와 수단에 비해 예산이 부족하면 아예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효과가 없으면 효율도 없습니다. 이렇게 예산을 부족하게 측정하는 일도 다반사인데,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1. 목적, 목표, 수단에 대한 이해 부족. 즉 회사와 고객에 대한 이해부족
  2. 급변하는 마케팅 상황에 따른 정보부족.
  3. 왜곡된 데이터. 과거 성과에서 운이나 상황적 배경의 비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마케팅 외주 업체들의 저가 경쟁 혹은 불완전 판매

입니다.

캠페인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캠페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실행하기 조금 더 쉽긴 합니다. 캠페인에는 보통 목표, 수단, 예산과 리소스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관련된 주체들의 고민이 조금 줄어듭니다. 하지만 이것을 마케팅 차원으로 확장하는 순간 모두가 혼란에 빠집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캠페인이 마케팅, 혹은 사업의 어떤 맥락에 놓이는지를 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업, 특히 큰 회사에서 오래 마케팅을 하다보면 마케팅을 캠페인의 집합으로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마케팅 캠페인을 모으면 마케팅 캠페인의 모음일뿐, 마케팅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치며

마케팅이 생각보다 안 되는 이유 중 중요한 것은 마케팅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입니다. 위에서 살펴봤던 마케팅을 충분히 하는 것도 조직 전체 차원에서 상당한 노력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케팅을 충분히 하는 대신 고민과 노력을 덜하고, 잠시동안은 인력과 자원은 아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불충분하게 마케팅을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마케팅이 두 배, 세 배로 힘들어지면서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됩니다. 불충분한 마케팅의 청구서를 받는 셈입니다.